비비언 고닉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나와 1.5 세대는 차이가 나는데 하는 생각들이 너무나 비슷하다.  60년대 후반, 70년대에 뉴욕을 걸으며 그녀가 했던 생각, 왜 산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사람과의 관계 그 속에서의 외로움 등 지금의 나와 너무 닮았다. 읽는 동안 어쩌면 2024년의 내가 이 책을 읽어서 이만큼 그녀의 글을 이해하고 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전의 나도 이해는 했겠지만 글을 읽는 동안 '내 존재가 이해받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30대 초반을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삶의 동반자를 찾아야 하는가', '내가 무언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을 읽고 나서 모든 고민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고약한 생각들과 고민들을 똑같이 하는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최근 들어 나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걸까,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었다. 

 

나는 언제나 삶과 욕망하고 얻어내는 일은 동의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지하고 분노에 찬 착한 여자의 방식으로 '의미'를 추구했다. 의미 있는 일(다시 말해, 지성이나 정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적절한 파트너가 될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중요했다. 이 두가지가 내게 필요한 쌍둥이 같은 조건임을 알았다. 이 두가지는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 없이 다른 하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강박적으로 수다를 떨어댈 뿐, 공부를 할 만큼 고독을 오래 견뎌내지는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생각이 꾸준하게 나아가도록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었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공상에 잠겼고, 남자를 생각하며 넋을 잃었다. 
-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 진다 中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것에는 '네'라고, 또 어떤 것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다 보니 어느새 혼자 살게 되었다. 대답하는 일 자체가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내 대답에는 오직 내가 중대하게 관심을 가졌던 한 가지만이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나는 외로움을 두려워 하게 되는 일을 경계했다. 고독한 노년의 공포에도 몸을 사리지 않으면서 일과 사랑 같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일이 내게는 중요하게 느껴졌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너무도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아넘기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고 나는 주장했다. 그러니까 그 불안에 저항하는 일은 내게 정치적 견해 비슷한 것이었다. 그 입장을 쉽게 취할 수 있었다. 그 문제를 나는 초보적인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 혼자사는 일에 대하여 中

 

 

 

지난 달부터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 존재가치가 과연 있는가? 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해왔다. 그 가치가 떨어졌고, 그래서 내 친구들과의 우정이 위태롭다 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조차 가치가 있어야하나?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그 반대로 사는데 있어 사는데 급급하여 시간내기도 어려운데 그 가치를 증명해내는 사람과 친구 관계를 계속 맺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사실 후자가 더 먼저다. 지금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가치도 증명해내고 있지 못한 지금 내상태로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지만, 봄맞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친구로서도 나는 내 가치를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불안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책에 수록된 모든 에세이 속 키워드인 '외로움'에 대해 공감하기도,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결코 이길 수 없는 내면의 싸움을,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결론이 나는 전쟁을 하며 삶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인생에는 우위를 차지하는 한두 가지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도시는 이런 역학의 영향 아래에서 돌아간다. (중략) 아파트 문을 닫는다. 30초 뒤, 나는 거리에 있다. 거리를 주신 신께 감사를! 표현하는 능력을 갈망하지만 우울을 떨쳐낼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中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정에도 짜릿함만큼이나 평안함이 필요하다. 그 두가지가 모두 갖춰지지 않으면 마음의 접붙이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결은 신뢰할 수 없는 순간의 문제로 남는다. 꾸준히 연결되지 않으면 우정에는 미래가 없다. (중략) 나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데 실패한다는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중략) 좋은 대화는 지성과 정신의 단순하지만 신비로운 어울림에 달려 있는데, 그 어울림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동의 관심사나 계급적 이해관계, 혹은 공동으로 세운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문제다. (중략) 기질이 같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의 흐름이 거의 끊기지 않는다. 
- 영혼을 죽이는 사소한 일들 中

 

 

 

스탠리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의 고립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의 화려한 조소 뒤에는 엄청난 양의 수동성이 숨어 있었다.
- 영혼을 죽이는 사소한 일들 中






 

오늘 아침에는 로라가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익숙한 찬반 토론을 반복했다. 그동안 우리의 의견 교환은 기민하고 박식하며 호의적인 말들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우리에게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함께 나누는 통찰의 현명함에, 참조할 만한 것으로 언급하는 주제들의 광범위함에, 공유하는 가십의 세련된 성격에(여기에 필요한 질감은 비슷한 상황들이 제공해준다) 즐거워진다. 생기를 되찾은 우리는 이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납득했다. 한 시간의 전화통화 끝에 로라는 새로워진 느낌을, 나는 정화된 느낌을 얻었다. 다가오는 하루의 불안에 맞설 용기를 얻은 우리는 수회기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中


비비언 고닉의 책은 '사나운 애착', '짝없는 여자와 도시'에 이어 세 번째다.  비비언 고닉의 삶을 조금 더 알고 싶다. 그럼 내 고민들에 대한 답, 혹은 실마리를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쌓여 있는 책들을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이 책을 읽고 싶다. 한번은 꼭 다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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